지도설명: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강리도·1402년)를 본떠 그린 모사본(模寫本)인 혼코지본(本). 원본은 아직 못 찾았다. 의미 있는 몇 가지 모사본, 일본에 있다.
상형문자와 한국어의 관계를 공부하러 이집트와 중국, 영국과 프랑스 등지를 휘돌 때, 그 소문을 들었다. 한 외교관이 ‘세계 최고(最高) 우리 고지도’의 속뜻을 찾아 헤맨다는 얘기였다.
책 ‘1402 강리도’의 매력에 젊은 독서인들이 안목이 젖어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소문’을 떠올랐다. 저자의 지방강연에 맞춰 KTX를 탔다. 그 지도, 수장(水葬)된 채 온 겨레를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거북선의 존재만큼 ‘거대한 주제’일 것이다. 설렘은 동지의식일 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는 이름, 저자는 1402년이라는 지도 제작 시점(時點)에 의미를 부여해 ‘1402 강리도’라 불렀다. 책 이름으로도 매력적이다.
‘세계의 지리와 여러 나라 도시 역사의 개요를 하나로 엮은 그림’이란 뜻이다. 가령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만 점찍은 것이 아니고, 그 곁에서 무너져가던 파로스섬의 유명한 등대까지 그려 넣은 지리와 역사의 혼성(混成 하이브리드) 지도다.
전직 외교관인 김선흥 선생의 동서고금(東西古今) 종횡무진(縱橫無盡)이 ‘혼일(混一·하나로 섞음)’을 통찰(洞察)하니 책을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시인이 됐어야 했을 법한 저자의 마음, 인간 향한 경건(敬虔)함이 그윽하다. 재미난 주제에다, 문장의 역주(力走)도 경쾌하다.
외교관 되어 ‘시인’을 떠났던 점, 되레 다행 아닐까. 저 통찰은 현장에서 잡아챈 직관과 명상이려니. 인류의 세계관을 맑게 틔워 줄 절묘한 연장이리라. 1402년의 지도 작업과 닮았다.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행로’는 펜보다 핵미사일보다 힘이 세다. 패권(霸權) 구슬치기에 빠진 바이든이나 시진핑 같은 골목대장들, 또 트럼프나 푸틴 따위로 인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데모크라시 등 막장 시스템과는 다를 터다. 저 책이 피워내는 지성(知性)을 말함이다.
책 이름 ‘1402 강리도’ 위에 ‘아프리카를 최초로 그린 세계지도의 탄생’이란 부제는 해석이 필요하다. 지도는 암각화나 상형문자처럼, 문명 초기 인간 시야(視野)와 시거(視距)의 반영, 즉 인류학적 안목(眼目)이다. 세상을 더 먼저 더 넓게 멀리 보았다는 것의 뜻은 무엇인가?
도남붕익(圖南鵬翼) 장자 소요유(逍遙遊)편의 이미지, 거대한 붕새가 세상 주름잡는 날개짓으로 새 경지를 도모함이여, 개벽(開闢)은 오고 있다. 어쩌다 청년인류는 겉늙어 말귀와 글눈을 잃었던가? 이미 더럽혀진 기성(旣成)의 틀에 공짜로 묻어 가려하는가? ‘영웅’ 포기 선언인가?
6백 년 전의 겨레가, 먼 할아버지들이 마련한 ‘그 그림’ 疆理圖는 중화(中華) 향한 사대주의의 질곡(桎梏)을 깨부수고자 하는 강력한 자기암시다. 중간에 서는 어중간(於中間)은 편하지만 ‘어중간’하다. 경계해야 할 기득권 닮은 삶이다. 於는 전치사 at와 같은 ‘~에’의 뜻이다.
중간을 깨고 경계를 박차야 ‘살길’ 보인다. 줏대 버리고 국제정세 또는 ‘천하(天下)의 실존’에 매달려 흔들리는 것, 오랜 그 통념이 과연 옳은지 붕새의 은유(隱喩)에 묻는다. 저 그림의 속뜻, 이제껏 덮고 살았다. (기득권의) 무지 또는 비굴일 터.
‘강리도’의 그 물음을 6백년 다음 사람 김선흥이 책 ‘1402 강리도’로 다시 묻는다. 청년(靑年)은, 장엄하게 응답하라.
■ 토막새김
강리도(1402년). 아프리카 아래 바다도 희망봉과 함께 그려 지금도 세계의 항해나 지도의 역사에서 경악과 찬탄의 표적이다. 콜럼버스가 이 지도를 썼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 전, 서구인들에게 아프리카 (남단) 아래는 바다가 아니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육지로) 붙어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정화 함대는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 손만 대보고는 이내 돌아왔다.
조선 초기 선조들, 개경과 한성에 앉은 채 9만 리 이역(異域)을 어찌 꿰뚫어 보았던 것이냐?
강상헌 (재)아시아인문재단 슬기나무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