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참으로 부끄럽고 애통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즉 1402년인 조선 초기에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까지 그려
천하를 넘어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던 것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다.
‘좌의정 김사형’, ‘우의정 이무’, ‘참찬 권근’, ‘검상 이회’
이 네 분이 당시 최고의 세계지도를 그려낸 그 주역들이다.
그러니까 희망봉이 발견되기 훨씬 전이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야단법석을 떨던 때 보다 무려 90년 전이다.
물론 지금 시각으로 이 지도를 보면 곳곳에서 엉뚱한 면이 있지만,
당시의 시각과 의중으로 봐야 할 것이며,
이 지도는 단순 지리적 개념에 국한하지 않고 역사를 품고 있는 대서사시나 다름없
다.
그 동안 일본 쿄토의 한 대학에 잠들어 있던 이 지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
은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
니언 박물관 전시회에 출품되면서다.
뒤 늦은 이 지도의 등장으로 세계의 석학들이 경탄하고 찬사를 보내면서
역사를 다시 쓰고 있건만 정작 후손들은 중화주의에 빠진 지도라는 잘못된 시각으
로 혹평하면서 폄하하기에 바쁘다 보니 아직껏 많은 이들이 민족의 보배를 몰라보
고 있다.
지적 태만에 빠져 세계사적 맥락을 잃어버린 탓이다.
그동안 나라 밖에서 이 지도의 찬탄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강리도는 당시 가장 웅장한 지도로서 동시대 서양이나 아랍의 모든 세계지도를 완
전히 무색하게 해버린다.” -조지프 너덤(영국 동양학자)
거기에 실물조차 지켜내지 못해 남의 손에 놀아나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
는가.
이에, 늦게나마 선조들의 얼을 이어받고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설레임을
다듬어 어렵싸리 원본에 손색없는 ‘박하선본’을 만들었다.
이제라도 우리의 시각으로 천하를 조망하는 웅혼한 기상, 되찾은 우리의 세계를 각
급 교실과 공공기관, 또는 거리의 카페 등에 걸어두고 민족의 자긍심을 빛내며 우리
의 세계상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전남일보 2023.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