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무등공부방에서 김성범 박사의 저서《베트남사상가 응웬짜이》출간발표회를 열었다.
이번 출판발표회에는 베트남 학자 및 유학생들이 함께 참여하여 베트남사상가 응웬짜이의 신위 앞에 제단을 만들고 기렸다. 베트남 학자 다오 부 부는 "한국에서 베트남 사상가에 대한 저서가 출간되어 너무도 기쁘고 이 책이 베트남에서도 베트남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 저서는 베트남의 대월(大越, 1054-1804)시대 사람 응웬짜이(Nguyễn Trãi, 阮廌, 1380-1442)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이다. 그는 명의 20년 식민지배와 한화(漢化)라고 부르는 치밀한 동화정책이자 민족말살정책에 맞서 10여 년 동안 무장독립투쟁을 벌이고 독립을 쟁취한 베트남의 민족영웅이다.
대월의 수도인 탕롱(오늘날의 하노이)에서 쩐조(陳朝)의 황족이자 사도(司徒)직에 있었던 외할아버지 쩐응웬단(Trần Nguyên Đán, 陳元旦, 1325?-1390)이 머물던 관사에서 태어났다. 사도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하이즈엉(Hải Dương)성 치린(Chí Linh)현으로 돌아가자 응웬짜이도 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6세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어 10세 무렵에는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신 후 부친의 고향인 니케(Nhị Khê) 마을(오늘날의 하떠이)에서 살아 갔다. 20세인 1400년 호조의 태학생이 되었지만 1407년 명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관리였던 부친이 명으로 끌려갔다. 이후 10여년 동안 명에게 붙잡혀 노예처럼 지내다가 1416년 레러이의 봉기에 참여한다. 이때 독립투쟁의 전략과 전술을 담은 <평오책(平吳策)> 저술했다.
1418년 레러이와 함께 남산의군(藍山義軍)의 전략을 수립하고 심리전을 펼치고 모든 외교문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1427년 독립을 쟁취하고 개국공신이 되었지만 그들의 전횡을 지적하다 결국 레타이똥(黎太宗)의 독살혐의를 받고 삼족이 멸하는 형벌을 맞는다. 하지만 불과 몇년 만에 신원이 되었다.
그는 인의(仁義)를 중심으로 삼고 모든 전략과 전술을 수립한다. 강한 명의 군대에 맞서 독립투쟁을 벌이는 빠르고 유연한 실천으로부터 드러난 사상이다. 그의 삶과 사상을 통해 중국의 동과 남에서 끊임없는 동화정책에도 수천 년 동안 민족의 나라를 유지한 두 나라의 묘한 친연성과 상보성과 특이성을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다. 새로운 제국주의의 충돌 양상을 보이는 오늘날의 국제적 상황에서도 당시 대제국이었던 명과의 독립투쟁 노선의 기본적 사유는 유용하다. |